일본과학기술총력전, 야마모토 요시타카 [2]
近代日本一五〇年 -科学技術総力戦体制の破綻-
맹신에 열정만 들어찰 때 일어나는 일들
일본과학기술총력전을 드디어, 드디어 다 읽어보았다. 작년 8월에 산 책을 꾸역꾸역 읽어내다가도 번역체가 익숙지 않았고, 단어도 한자어가 많은 탓에 여간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는데, 드디어 다 읽었다.
책의 맨 앞장에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샀는지 이렇게 적어 놨다.
‘과학기술 총력전’ : 내가 지금 과학과 기술에 거는 기대와 야망은 저 7글자에 안에 모두 들어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부국강병. 거침없는 전진과 맹목적이다 싶을 만큼의 신뢰. 나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런 의지와 생각이 일본의 그것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나저러나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이 과학기술을 서양으로부터 들여온 과정과 유사한 듯한데, 내가 저 사상을 우리나라에서 구현하려면 이미 그 길을 걸어본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글에는 반면교사로 삼는다지만, 나는 일본이 우리와 무엇이 달라서 20세기 초 제국열강이 되었는가 궁금했다. 여전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듯한 우리나라에 대한 안타까움과 불안감도 있었다. ‘선함’을 추구한다며 피해를 본 것. 힘이 없어 손해를 본 것들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스스로 정당화시키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다. (가령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거나, 쳐들어가지 않았다거나 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것들) 겉으로는 웃을지라도 속으로는 칼을 갈며 도약할 국가이지 못한 것 같아 답답해하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집었던 이유는 이런 열등감과 분노, 답답함과 불안함을 극복해낼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책은 전체의 약 7-8할 분량을 들여 정부와 민간산업계, 과학계가 어떤 상호작용을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막부 말 메이지 유신을 거쳐 정부 주도, 특히 군 주도의 과학기술 성장을 주목한다. 그 결과 ‘진실에 대한 의심/검증’으로 동작해온 과학이 기술의 도구가 되고, 기술은 정부의 도구가 되었다 라고 말한다.
군산복합체가 근대화의 주요 동력으로 동작하고, 과학과 기술은 무비판적으로 맹신되어오며, 일본의 산업과 문명은 급격히 팽창해가다 1945년 원폭 2발에 잠시 일시 정지한다. 역설적이게도 과학자들은 그 시기가 가장 자유로이 연구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한다.
이후 저자는 전후, 오늘의 일본도 그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하며 현 일본의 방위산업과 핵무기에 대한 외무상의 성명을 이야기한다. 군국주의 국가, 일본 제국의 부활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는 메이지 시기 일본정부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했는지 무척 감탄하며 읽었다. 단순히 기술만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타국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기 위하여 교육제도와 연구정책 등을 개선하고 도입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저 과학하는 사람입니다’, ‘저 기술하는 사람입니다’ 하면 우대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도 무척 인상 깊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많은 인재들이 과학과 공학에 몰릴 수 있었고, 일본이라는 국가는 세계열강들과의 기술 격차를 줄여나갔다. 이때의 인재들이 일본제국의 방위산업기술을 끌어올렸고, 전후 일본 재건 때에는 이 끌어올린 기술을 기반으로 재건에 성공했다. 400여 페이지에 압축되어 표현된 탓도 있겠지만, 일본 정부, 특히 전쟁 전 일본 정부가 얼마나 촉박하게 달려왔는지 알 만하다.
나는 일본이 한 때 제국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스스로 제국의 권위를 갖출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과학기술을 통한 부국강병을 이뤄낼 것인가. 책을 읽던 초반과는 좀 다른 여러 비판적인 생각이 생겼다. 특히 과학기술을 국방의 요소로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과 집착이라 할만큼의 그들의 태도를 보면서 과학기술을 이용한 국가 발전의 전략은 좀 더 교묘한 방법이 필요해 보였다. 과학기술 = 국방력 증강! 이 아니라 가령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같이 구렁이 담 넘어가는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일본은 어떠한 이유로 실패를 겪었는지 잘 보여준 책이었다. 맹신에 열정만 들어차 으쌰 으쌰 하다가 이 책을 읽고 고민해볼 것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