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the martyred), 김은국(도정일 옮김)
7살 때 매 주말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성당을 나갔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성당의 주일학교에 나가게 되었는데, 머리가 크면서 이것저것 질문거리가 생기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나는 더 이상 성당을, 더 나아가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8,9살의 내가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왜 우리는 매번 미사에서 내탓이오-내탓이오-를 외치는 것일까?’, ‘우리의 주변엔 항상 힘든 삶, 배고픈 삶, 전쟁으로 고통받는 삶이 있다는데, 전지전능하며 우리들의 어버이라 불리는 신은 왜 이를 해결하지 않는 것일까?’, ‘나쁜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는 데, 실로 전지전능하다면 지옥은 왜 있는 것일까? 전지전능했다면 지옥을 없앴고 모두가 행복한 천상낙원을 만들지 않았을까?, 전지전능함에도 지옥이 있다는 것은 실은 지옥의 관리자도 우리가 믿는 하느님인 것이 아닐까?’ - 이런 것들이 있었다. 주일학교 선생님과 우리 부모님, 성당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종합해보면 우리에겐 태초부터의 원죄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거나,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회개가 필요하고 그렇기에 기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럼 왜 선악과를 갖다 놓았는가?’, ‘신을 알지 못해 믿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갔을까?’ 이런 의문들을 가지며 도통 이해가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낱 개미가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듯 사람이 주님의 생각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머리가 좀 더 크고, 짤막한 지식들을 머릿속에 몇 개 넣으면서 나는 더 이상 성당에 가지 않게 되었다. 종교가 없어도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 수 있었고, 종교가 있다고 해서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삶의 의미를 종교에서 찾지 않아도 나의 삶을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았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이 생기면서 삶은 충만해졌다.
우리 가족 중에서는 외할머니가 굉장히 독실한 신자이신데, 여든이 넘으셨음에도 꾸준히 성당에 나가시고 우리에게도 기도와 성경을 권하신다. 한국전쟁과 혼란의 한국 근현대사를 모두 겪어내신 분으로서 그 분에겐 크나큰 힘이 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 외할머니에게는 믿음과 종교가 삶의 원동력 중 하나이자 풍요로움을 만들어내는 것 중 하나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책 ‘순교자‘는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평양에서 이뤄진 12명의 기독교 목사들의 처형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전쟁의 고통 속에서 종교와 믿음이 주는 희망이 얼마나 유효할까. 이미 목사의 신앙심은 무너질대로 무너졌지만, 절망만이 가득한 사람들로부터 일말의 희망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믿음을 전파하고 진실을 감추는 장면들이 나온다. 난 이런 장면들을 읽으며 종교 또한 어떠한 믿음의 종착지가 아닌 우리 삶의 풍요를 더할 수단 중 하나인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책에 여러 대사들이 나오는데 아래와 같은 대사들이 기억에 남는다.
- 책의 등장인물, 이 대위는 신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신 목사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 이 대위가 신 목사에게 진상,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촉구한다. 그러자 신 목사는 이런 반문을 제기한다.
젊은 친구, 그들이 진실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소?
- 이 대위는 신 목사에게 왜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신 목사는 소곤거리듯 말한다.
난 평생 신을 찾아 헤매었소.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고통받는 인간,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소. (...중략...)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오. 무의미한 고난으로 가득찬 이 삶의 질병이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돼요. 우린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그것이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겁쟁이로 쪼그라뜨리지 못하게 해야합니다.
“인간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군집을 이루고 지구상의 가장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라는 문장을 언젠가 본적이 있다.(찾아보니 아마 유발하라리-사피엔스
책인 듯) 종교는 사람의 상상력에 숨을 불어넣고, 믿음을 연료 삼아 인간 문화를 변화시키는 (그것이 전진하는 것이든 후퇴하는 것이든) 역할을 착실히 수행해왔다. 종교인이 줄어드는 오늘날, 우리들의 비어져만 가는 상상력과 믿음을 채워넣을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게 무엇일지는 모르겠다. 비현실적인 것들을 가리켜 낭만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오늘날 낭만 없이 살아간다는 말들도 결국 우리의 고갈되는 상상과 믿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