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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계획되었는가, 염복규

우리가 마주하는 서울의 시작

서울은 어떻게 계획되었을까? 도시 계획이란 용어는 오늘날 ‘신도시 계획’에서나 들어볼 법한 용어이지만, 서울은 엄연히 계획 개발이 진행된 도시이다. 그것도 꽤나 오래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서울은 조선의 한양과는 많이 다르다. 조선의 한양은 사대문으로 둘러싸인 도성 내부 구역과 도성으로부터의 4km 정도를 포함하는 영역이었는데, 해당 영역은 오늘날 서울특별시의 종로구, 중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서울에는 25개의 구가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서울은 언제 이렇게 커졌을까?

본 서평에서 다루는 책, ‘서울은 어떻게 계획되었는가’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서울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다룬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의 도시개조사업부터 시작하여 조선총독부의 도시계획까지 다루고 있는데, 주된 소재는 통감부, 총독부, 경성부에 의한 경성시구개수, 조선시가지계획령, 경성시가지계획 등을 다루고 있다. 일제의 조선도시계획정책을 짧지만, 꽤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정책의 시행자인 일제 의도부터 당 시대의 여론, 외교환경, 경제환경, 일본 정치환경까지 통합적으로 다루어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 시대의 신문 및 문학작품을 인용하여, 당시의 조선인, 일본인이 일제의 도시계획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그 시대의 여론을 정말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책의 시작은 무척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가 식민지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그리고 오늘날에도 식민지 시기를 바라보는 주된 역사적 관점은 일제가 한국의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했고, 근대화를 저지했다는 ‘식민지 수탈론’이었는데, 식민지 시기의 서울도시계획을 다룬다는 것은 곧 일제의 한국 근대화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논란을 빚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식민지 근대’의 역사를 환기시켜 보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자 최종적인 문제의식 이라고 밝혔고, ‘식민지’와 ‘식민지가 아닌 나라’ 사이에서 어떤 차이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고 밝히고 있다. 책에서도 인용하지만,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하지 않는가. 도시계획은 근대 지향적이라는 요소를 필연적으로 담고 있다. 따라서 식민지기의 도시계획정책을 읽을 때에는 일제의 한국 근대화인가 아닌가를 넘어서, 당시 그들이 바라보던 도시계획개발의 ‘목표’와 ‘가치’ 그리고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염두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이런 점들을 염두하며 읽을 때, 일제가 계획했던 식민지 한국은 무엇이었고,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친절히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그 소재가 실례인 도시계획정책이기 때문에 일제의 식민지 의도를 더욱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약간의 책 이야기를 해보자면, 총독부의 조선시가지계획령에서 그들의 의도를 명확히 읽을 수 있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조선에서의 종합적 도시계획을 가능케 하는 법이었는데, 본 법령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국가차원의 정책 보다는, 경성부 및 민간 차원에서의 응급성 도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강제병합 이후 24년 만인 1934년, 총독부는 ‘제국의 국책적 필요’를 이유로 들며 조선시가지계획령을 제정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제국의 국책적 필요’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러한데, 첫째는 30년대 초 일본을 강타한 대공황 여파를 극복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일본/조선/만주를 묶는 대륙침략최단루트, ‘북선 루트’ 개발서부터 갖가지 개발정책에 폭등하는 땅값과 투자 광풍을 국가가 통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셋째는 30년대를 전후로 일제가 서구의 광역도시계획을 자국에 도입하면서 생긴 일본 정치권의 인식 변화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의 인식 변화란 도시개발은 ‘쓸데없는 것’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조선시가지계획령에서 읽히는 일제의 의도란 곧 대륙병참기지로서 조선에 공업도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조선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여 국가의 의도에 맞게 재단하고 설계하기 위함인 것이다.

내가 위 부분을 읽으며 의아했던 것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개발정책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던가,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라는 의도라던가. 조선시가지계획령은 무려 놀랍게도 광복 후 국가의 주체가 대한민국 정부로 수정되었을 뿐, 1962년 도시계획법이 제정될 때까지 존속했고, 법적 효력이 있었다. ‘식민지 근대’의 역사를 환기시켜 보자는 저자의 의도가 비단 1945년 이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조선시가지계획령 이외에도 낯설지 않은 식민지기의 도시 모습이 보인다. 오늘날에도 익숙한 개발 정책과 빈번히 발생하는 개발정책의 문제점들이 식민지 시기에서도 읽힌다. 도시개발을 위한 빈민촌 철거가 진행되면서 갈 곳을 잃은 이들을 경성부가 골칫거리로 여기는 모습이나, 철거에 반대하며 시위하는 그들의 모습. 특히 이런 모습을 서술하는 장에서는 민족과 민족 사이의 대립보다 부유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대립으로 읽힌다. 갈 곳 잃은 이들을 당 시대에는 ‘토막민’이라 불렀는데, 이런 토막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경성부가 계획한 ‘빈민주거대책:세민지구’가 토지 소유자들의 사익 추구와 부딪혀 집행 정지되는 모습 또한 낯설지가 않다. 공간상으로 보아도 낯설지가 않은데, 오늘날에 부촌인 용산, 이태원 부근은 1937년 ‘경성시가지계획결정이유서’에 의해 고급 주거지역으로 계획되었었다. 같은 계획서에 의해 오늘날에 주택촌인 신촌과 은평구 쪽은 그 당시에도 대부분 주거지역으로 계획되었었고, 한 때 6.25 이후 남한 최고의 공업지역이었던 영등포는 이때의 계획서에서 시작했었다.

광복으로부터 반백년이 지나 태어나고도 식민지 시기의 도시계획이 그 의도와 과정, 그리고 결과면에서 오늘날에도 익숙하다고 느껴지다면, 식민지 유산의 청산이란 여전히 우리들에게 남겨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책에서 인용한 한국의 도시계획에 대한 평가를 몇 가지 읊어보자면, 「 일본 학자 와타나베 쥰이치는 해방 후 한국도시계획에 대해 ‘식민지기의 것을 계승한 힘의 도시계획으로서 이를 통해 한국은 일본보다도 기쁜 성과를 올렸다’라고 말했다. 」 「 한국도시계획사 연구의 선구자 손정목은 ‘일제가 남기고 간 계획 의식, 계획 수법이 부지불식간에 오늘날에 계승되고 있는 슬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 굳이 저자가 강조하지 않더라도, 다만 서 있는 장소가 다를 뿐, 두 사람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오늘날의 서울은 다행히도 조금씩 그 익숙한 허물을 벗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계획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건축 및 건설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9살, 10살 때 걷던 서울의 풍경과 지금 걷는 서울의 풍경은 다르기 때문이다. 확장을 거듭해가던 서울이 구도심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개발과 철거가 아닌 도시재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허물을 벗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서울도시계획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 시기에, 서울에 살고 있다면 혹은 서울 거리를 걷기 좋아한다면 꼭 한 번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책에서 읽어왔던 역사 속 서울과 지금의 서울은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그 간극을 잊고 살아가곤 하는데, 이 책은 바로 그 잊혀진 간극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주쳤으나 인식하지 못해 왔던 서울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그간 놓쳐왔던 서울의 역사와 식민지기의 역사를 일상의 거리에서 다시 읽게 해준다. ‘서울은 어떻게 계획되었는가’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힐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티스토리에서 썼던 글